title 안작가가 들려주는 제주 이야기 28 인쇄 메일 ZOOM out
from 안현미 date 2012-02-09 hit 3276

안작가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그 스무 여덟번째 이야기는
<제주의 옛 사찰>에 관한 두 번째 이야깁니다.

<제주의 옛 사찰 ②>

법화사외에도 고려시대 제주를 대표하는 사찰로는 어떤 곳이 있었을까?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제주시 외도동,
올레 17코스중 한 곳인 이곳에
법화사에 버금가는 사찰이 있었다.
바로 고려시대 3대 사찰중의 하나인 수정사다.

수정사는 조선시대 초반,
130명의 노비를 보유했던 사찰로서 그 규모가 상당했다.
사찰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지난 1998년 이곳에서 출토된 주춧돌의 크기를 보면
수정사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사찰유물중 가장 화려한 유물이
수정사 옛 터에서 출토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탑의 한쪽 면석에 새겨진 음각, 즉 인왕상이다.
음각솜씨가 고려시대 최고 걸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유물이 확인되었는데,
작은 문양의 탑, 석등지, 중국 북송의 화폐,
1694년 연대에 해당된 각종 도자기 유물이 출토되어,
제주 사찰중 가장 화려한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수정사외에도 고려시대 3대 사찰중의 하나로 꼽히는 사찰은
제주시 삼양동에 자리잡은 원당봉에 자리잡은 원당사이다.
이곳 또한 올레 18코스중의 한 곳으로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이 사찰이 주목받는 까닭이 있다.
바로 불탑사 오층석탑 때문이다.
 
불탑사는 고려시대 3대 사찰중 하나인 원당사의 옛 터로
당시의 원당사는 조선 효종 4년까지 존속하다가
숙종 28년 배불정책에 의해서 훼불되었다.
석탑만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 불탑사 오층석탑이 주목받은 까닭은
바로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전설이 서려있는 석탑이기 때문이다.
기황후가 태자를 얻기 위하여,
삼첩칠봉의 주봉인 이곳에 탑을 건립하고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 남아있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고려시대 조형미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고려시대 3대 사찰외에도 제주에서 살펴봐야 할 사찰이 있다.
바로 한라산 영실의 존자암이다.
존자암은 한라산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탓에
예로부터 스님들의 도를 닦던 암자로
존자암의 창건연대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다.
다만 두가지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고려대장경 법주기, 기원전 540년경 석가모니 열반 직후,
발타라존자가 탐몰라주에 불법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나올 뿐 아니라,
고량부가 처음 일어났을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다.
 
가장 높은 곳, 가장 깊숙이 위치한
제주 유일의 청정도량이었던 존자암,
존자암은 3읍의 수령중 한 수령이
좋은 날을 점쳐 목욕재계하고
국성재를 지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존자암은 스님의 수행장소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수행스님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했던 부도가
제주 유일 보존되고 있는 사찰이다.
사찰 한 구석에 보존되어 있는 부도는
속세와 떨어져 자신을 닦던 스님들의 고행을 느끼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 가장 신성한 곳에서
스님들은 마음을 닦고 또 닦았던 곳이다.

한라산 깊숙이 자리잡은 스님들의 수행암자인 존자암,
원순제의 피난궁궐이었다는 법화사,
기황후의 전설이 내려오는 원당사,
그리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수정사터까지
오랜 세월 제주사람들과 함께 해온 옛 사찰,
하지만 아직껏 사찰의 창건연대는 물론
주체 또한 명확하지 않다.
한반도에 비해 불교문화가 번창하지 못했지만
불교 또한 제주사람들의 신앙체계이자 종교,
제주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유산이지 않을까?
  • 김은주 | 2012-02-28

    안작가님 제주도에 대한 유익한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제주문화의 일부분인 이사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글 부탁 드려요

    댓글
  • 오영석 | 2014-03-20

    조선시대 절에 중과 신당의 무격(심방)들의 폐해가 극심하여 혹세무민 하였으므로 병와 이형상 목사는 절과 신당 전부를 훼파 하고 중과 무격들을 환속시켜
    농삿일에 종사케 하거나 방호소의 수졸로 근무케 하였다, 그러한 일을 하였음에도 島民의 민란이 없었음은 가히 중들과 무격들의 폐해가 극심했음을 알수있다, 병와 목사는 80여세가 넘는 천수를 누렸으니 절귀신이나 신당의귀신들도 犯正 앞에서는 무력했음을,...제주 섬 역사의 최대의 무혈혁명이다,..그후 200여년 제주에 절간이 없다가 다시생겨 신당도 간간이 있고,...
    작금의 성당,교회,절간,신당,여타 종교라는것들 병와 이목사가 본다면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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