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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물빛이 아름답고, 수심도 고른 편이어서 물놀이에 적당하다. 바람이 좋아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이들이모여든다. 야영장이 잘 갖춰져 있다.
월정리 밭 작업 도중에 발견된 용암동굴이다. 지표 아래 약 3m에 생성된, 입구가 없는 용암동굴로 동굴전체에 종유석 기둥이 발달해 있다. 길이 110m, 폭 5~15m, 높이 1.5~2.5m로 크기는 비교적 작지만 학술적 가치가 커, 1996년 12월 천연기념물 제384호로 지정해 보호 하고 있다. 구좌읍사무소에서 당처물동굴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일장이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자리돔, 옥돔, 우럭, 조기, 갈치 등의 해산물이 특히 풍부하다. 매5일, 10일에 장이 열린다. 오후 4시면 파장하니, 장이 열리는 날 길을 걷는다면 늦지 않게 서두는 것도 좋겠다.
연대는 봉수대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옛 군사시설이다. 봉수대는 산정상에, 연대는 구릉지대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바다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에 연대를 세웠다. 제주도에는 38개소의 연대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연락하였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경우에는 연대를 지키던 군인이 직접 달려가 급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제23-15호.
광해군은 폐위 후에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태안을 거쳐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제주로 보내졌다. 당시 인조는 광해군에게 유배지역을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바다를 건널 때 배의 사방을 모두 가려 밖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1637년 6월 6일 행원포구(어등포)에 입항했는데, 배에서 내린 광해군은 그제서야 제주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전해진다. 다음날 주성 망경루 서쪽(지금의 제주 구시가지)에 위리안치되었는데, 위리안치란 유배형 가운데 하나로, 귀양간 곳의 집둘레에 가시가 많은 나무를 두르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것이다. 제주 유배 4년 4개월만인 1641년(인조 19)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광해군은 제주에 유배되어온 이 가운데 가장 신분이 높았지만, 위리안치되어 생활하던 곳도 남아 있지 않다.
‘태역’은 잔디를 일컫는 제주어. 잔디가 많아 제주올레가 붙인 이름 이다. 성세기 태역길 은 김녕환해장성까지 이어진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에 쌓은 석성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 삼별초군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왜구 침입이 심했던 고 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보수와 정비가 이루어졌다. 현재 그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10개소(제주시 화북, 삼양, 애월, 북촌, 행원, 한동, 서귀포시 온평, 신산)가 제주특별자치 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김녕의 환해장성은 최근 복원되었다.